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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생각

고골의 <외투>와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예스프키의 <가난한 사람들>은 고골의 <외투>에 큰 영향을 받아 계승, 발전시킨 작품이다. 모출스키의 <도스토예프스키> 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외투>를 읽은 뒤 그 예술적 가치에는 큰 감동을 받았지만 주인공인 하급 관리 아카키가 외투를 잃은 뒤 죽어버리는 것으로 묘사된 것을 보고,  지나치게 인간을 낮고 하찮은 존재로 그린 것에 불만을 느꼈다고 한다. 하여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한 사람들>에서 외투를 하나의 인간인 '바렌카'로 대체했다.  아카키의 외투에 대한 사랑은 제부쉬킨의 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바뀌어 거기로부터 고귀하고 높은 인간성이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선 늙고 가난한 하급관리 제부쉬킨이 젊고 가난한 처녀 바렌카를 애지중지하는 데에서는  단순히 인간애적인 태도를 넘어서는 무엇인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모출스키는 이를 '에로티시즘과 부성애의 결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렌카는 여러 차례 제부쉬킨에게 '과자나 화분 같은 것은 사지 마시고 본인을 위해 돈을 아낄 것'을 당부하지만 제부쉬킨은 계속하여 형편에도 맞지 않는 간식거리 등을 사서 바렌카에게 보낸다. 그도 그럴 것이 바렌카는 물론이고 제부쉬킨의 재정 형편은 아주 심각한 상태이다. 집세도 여러 달 밀렸으며 옷은 다 누더기가 되어가고 결국 제부쉬킨은 완전히 파산해 바렌카에게 푼 돈을 받아쓰는 지경이 되고 만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제부쉬킨이 바렌카에게 생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는 할 수 없는 과자나 화분을 사다주거나 극장 구경을 시켜주는 것들은 상당 부분 제부쉬킨의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부쉬킨의 바렌카에 대한 사랑이 순수한 인간애, 부성애를 넘어서는 그 이상이라는 것은 제부쉬킨이 과거 한 여배우에게 바렌카에게 했던 것처럼 물질적 공세를 바친 적이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오히려 제부쉬킨의 '인간적 고귀함'이 드러나는 순간은 같은 하숙집에 사는 한 남성이 완전히 파산한 뒤 단돈 10 코페이카만이라도 빌려줄 수 없냐고 간절히 요청했을 때, 당장 써야할 20코페이카밖에 없었으면서 결국 20코페이카 전부를 넘겨주는 장면에서 나온다. 간절히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인간에게 기꺼이 그것을-자신 또한 그것이 간절히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넘겨주는 것이다.)




반면 아카키의 외투는 다르다. 외투란 물론 물질적인 요소이고 정신적인 감정에 비해 그 가치가 낮아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카키의 외투는 생존을 위한 요소이다. 새로 외투를 장만하기 전 아카키의 외투는 완전히 낡고 헤어져 더 이상 수선을 하려고 손만 대었다가는 옷이 다 허물어질 지경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페테르부르크의 날씨는 점점 더 추위를 더해가 잠시 바람을 맞고 걷다보면 머리가 찡하게 아파오고 손발이 얼어버리는 지경인 것이다. 그런 강추위 속에 다 낡은 홑겹 외투로 버틴다는 것은 생존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옷이 너무나도 낡아버려 아카키는 직장에서 성실하고 조용한 관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체면을 다 잃어버린 상태였다. 따라서 외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바렌카에게 바치는 과자 따위보다 훨씬 더 인간적 가치에 어울리는 물건인 것이다.


또한 아카키가 외투를 건달들에게 빼앗긴 후 병을 앓다가 죽어버린 것은 단지 물질적 소유욕 때문이 아니라 그런 작은 외적 침입에도 자신을 방어할 수 없고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한다는 나약한 자신에 대한 자각과, 그 손실을 어떻게 해서도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극심하게 궁핍한 재정적 상황이 가져온 절망 때문이다.  아카키는 인간 생존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의 해결이라는 문제와 외부 세계의 폭력에 부딪혀 인간적 존엄성과 자유를 박탈당한 채 죽어버리는 가련한 주인공인 것이다.


<외투>에서는 가난하고 초라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적 가치를 드러내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아카키에게 새 옷을 만들어 준 재봉사이다. 재봉사는 초라한 집에서 수선 같은 소일거리로 생계를 해결하고, 부인의 구박을 듣는 신세지만 아카키의 새 외투 의뢰를 받자 몇 달 동안 시장 조사를 하고 예산에 따라 최적의 소재를 선택한 뒤  밤을 새워가는 꼼꼼한 작업 후  의뢰인의 의류 착용 모습을 신중히 검토하는 등 예술혼을 불태우는 장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외투>는 가장 낮은 곳에서도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고자 발버둥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창조적 정신을 불태우려는 인간들의 자화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