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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생각

서해순이 건드린 것

이상호와 김광복의 고소에 의한 서해순의 조사가  무혐의 불기소처분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론은 서해순을 연쇄살인범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이번 경찰 조사에서 응급구조대원,서해순 딸 서연양의 학교선생님, 당시 학부모들까지 포함한  47명의 참고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서연양의 핸드폰 문자, 일기, 서해순의 카드사용내역 등이 조사되었지만 추가로 밝혀진 것은  서해순이 다른 어떤 엄마들 못지 않게 딸을 성심성의껏 돌보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반대 증거에도 불구하고 서해순이 딸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김광석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서해순이 모든 관련자들을 매수했을 것이라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즉 김광석 사망 당시 부검의와 경찰, 서연 양 사망 당시 경찰과 응급구조원, 서연 양 학교 선생님, 같은 반 학부모들, 이웃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서해순이 현대 법의학으로도 밝혀낼 수 없는 고도의 의학적, 법적 지식을 동원하여 김광석과 김서연을 감쪽같이 죽이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을거란 가정이 필요하다. 양 쪽 가정 모두 불가능해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서해순이 권력가나 재력가도 아닐 뿐더러 관련 전문가들을 능가할 만큼의 관련 지식을 가지고 있기도 힘들다. 사람들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 완전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믿기도 한다. 일종의 도피인데 현실을 믿기보다는 환상 속에 있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은 모든 불가능을 뛰어넘어 서해순의 연쇄 살인을 상상한다.




이번 논란은 집안 내의 상속 다툼, 한 기자의 영웅주의 등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일테지만 그 중 하나는 서해순이란 자의 존재가 사람들의 무의식적 반감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그 것은  '여자를 잘 못들이면 집안이 망한다.' 식의 사고 방식, 죽은 남편의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니며 새 남자와 놀아나는 과부에 대한 반감이다. 쇼펜하우어는 그의 책 중 '여성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죽은 남편의 돈을 물쓰듯 쓰는 귀부인들의 행태를 비난하며 여성에게는 상속을 하여서는 안 되며, 그보다는 동양처럼 부인을 죽은 남편과 함께 생매장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귀부인들에 대한 반감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뒤 살롱을 열어 사회 유력 남성들과 교제한 어머니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개인적 반감을 떠올리게 한다.) 한반도에서 과부의 재가를 허가하는 법이 생겨난것이 이미 1800년대 후반이지만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한국전쟁때도 전사한 남편들을 대신해 돈벌이를 하느라 바깥생활에 몰두하며 외간남자와 접촉하는 여성들에 대한 반감은 상당했으며 주요 일간지에서 이런 과부들의 행태를 비난할 정도였다. 한국전쟁때보다야 사정은 나아졌지만 서해순 사건에서 나는 이런 사고방식의 재현을 본다. 무식한 여자가 남의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니는 데에 대한 증오. 이는 서해순 관련 기사 댓글엔 어김없이 최순실과 서해순이 닮았다며 그 오동통하고 혈색 좋은 얼굴을 못마땅해 하는 것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은 최순실의 범죄에 대한 증거는 있지만 서해순의 범죄에 대한 증거는 전혀 나오질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서해순이 남편과 자식을 살해했는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살인을 뒷받침할 증거가 전혀 없을 때, 더군다나 오히려 자살과 병사를 뒷받침하는 증거들만 있을 때 한 인간을 살인자로 몰아서는 안된다는 것만 알 뿐이다. 이 것은 따져보자면 무척 기본적인 것이지만 기본조차 잘 실천되지 않는 것에 놀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