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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생각

<영화 감상> 러빙 빈센트

사람들은 예술가를 통해 죽음본능을 대리 충족한다. 이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데 하나는 예술가가 남긴 작품을 통해서, 또 하나는 예술가의 삶을 통해서이다. 고흐의 삶이 이렇게까지 광범위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되고 소비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고흐의 처절하게 불행한 삶과 비틀거리면서도 거침없이 그 어두운 삶 속으로 걸어들어간, 그리하여 최후로 죽음에 다다른 고흐의 선택에 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구차하고 지리멸렬한 삶에서 도피하여 자유롭고 장대한 죽음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안락하고 쾌적한 매일매일의 삶을 양 손에 가득 움켜쥐기 위해  노동하고 평판에 신경쓰고 청결에 유의하느라 여념이 없다.  예술가는 대부분의 이들이 이렇게 소중히 가꿔가는 삶을 내던지고 죽음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남들이 귀중히 여기는 것을 과감히 내던지는 것은 엄청난 희열이며 또한 커다란 힘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가치 있는 단 한가지 것에 투신하는 예술가를 보며, 매일의 삶에 지쳐가면서도 그만둘 용기가 없어 여전히 바퀴를 굴리고 있는 우리들의 억눌린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지저분하고 가난하며 현실감각은 전혀 없이 오로지 음악만을 위해 살아가는 예술가'형은 영화에서 자주 반복되는 유형이다. 이런 예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사람들이 예술가에게 어떤 것을 바라는 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대신 버려주길 바란다. 모든 가벼운 것들, 휘발되는 즐거움들, 내일이면 사라질 모든 것들, 그 가치 없는 것들에 가차 없이 단죄를 내리고 오로지 영원할 것, 사라지지 않을 것, 언제나 스스로 빛날 것을 대신 숭배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보자면 편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간 예술가들의 삶은 사랑받을 수 없다. 가치 있는 작품을 남겼다면 작품으로써야 사랑받겠지만 그들의 삶에 대해서 눈을 반짝거리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이 예술가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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