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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생각

진짜와 가짜

나는 진짜와 가짜라는 수식어를 믿지 않는다. 누군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지어 가며 주장할 때는 자연스레 의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진정한, 참된 등의 말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물질적인 것에 대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 진짜 다이아몬드, 가짜 참기름 등 물질적인 것은 얼마든지 대부분의 경우 진짜와 가짜가 명확히 구분된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관념적인 것이다. 사상이나 가치에 대해 말할 때 남을 쉽게 배제하려 들고 자신만을 내세우는 자들은 손쉽게 자신에게는 진짜 딱지를 붙이고 남에게는 가짜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누군가 진정한 인간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특정 유형의 인간을 칭찬한다고 생각해보자. '진정한 인간'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진짜 인간'이 가능하려면 '가짜 인간'도 존재해야 할텐데 당연히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인 이상 모두가 '인간'인 것이다. 인간의 스펙트럼은 무궁무진하지만 그 중 어디에 속해있더라도 결국 인간일 뿐이다. '훌륭한 인간','천박한 인간'에 대해 논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온건파'와 '강경파'를 구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방법론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가짜를 나눈다는 것에선 결국 구별을 통해 배제로 나아가고 차별과 억압으로 나아가려는 의도밖에 보이질 않는 것이다. 역사상 수많은 정치인, 운동가, 시민들이 자기 편에 속하지 않은 자들을 '가짜'라 부르며 억압하려 들었다. 당연히 이런 태도는 자신만 옳다는 독단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상대방의 주장의 모순이나 그릇된 행동 방식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자들을 '가짜'라고 부르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