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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생각

안나 까레리나(톨스토이) 독서후기

톨스토이의 대표작 중 하나인 ' 안나 까레리나'는 안나라는 여성과 레빈이라는 남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두 인물은 인적 관계로 연결이 되어 있을 뿐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다.




안나 까레리나는 까레닌이라는 남성과 결혼 생활 중 매력적인 독신남인 브론스키를 만나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결국 까레닌의 집을 나오게 된다. 그 당시 귀부인과 총각의 비밀 정사는 흔한 일이었기에 이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결혼 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한 안나의 행동은 의외적인 것이었다. 그만큼 안나는 그녀가 속한 사교계로 대표되는 귀족들의 일상적인 가식, 허위를 견디지 못하였다.


우리의 시각에서 볼 때 혼외정사나 불륜은 비난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에서나 스탕달의 '적과 흑'등의 귀부인의 삶을 다룬 소설에서는 젊고 미남자인 총각과 사랑에 빠지는 귀부인의 행태가 단순히 정욕과 애정의 충족이라는 목적을 넘어  관습의 거부, 자유를 향한 투쟁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결혼이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의사는 무시된 채 정략적인 측면을 띄고 있었기 때문인데, 안나나 '적과 흑'의 레날 부인 모두 남편과의 상호적인 애정 없이 결혼이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두 부인이 절망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사랑 없는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결혼 생활 내내 단순히 주어진 환경이기에 받아들인다는 체념적이고 현실 안주적인  애정만을 가진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결혼 생활은 직접적으로 여성의 몸과 마음을 뒤흔들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남성에 의해 균열이 생기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지위,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생활을 포기할 위기에 처하면서도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따라가려는 태도는 저항적인 면을 띄게 되는 것이다. 불륜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유명 희극인 입센의 '인형의 집' 속 여주인공이 남편에게 선언한 뒤 집을 나가는 것도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설이 끝으로 치달을수록 안나는 점차 분열되고 붕괴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안나의 병적이랄만한 초조함과 집착은 왜 그가 그렇게까지 되어야 할까? 왜 작가는 안나를 이렇게까지 묘사해야 했을까? 라는 의문을 들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나의 생각은, 사회적 관습을 깨고 고유의 자신을 드러내려는 인물은 결국 파탄에 이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전통과 관습의 거부는 그 시작부터 비극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적과 흑'의 연인도, 안나와의 최후와는 다른 형태이지만, 쥘리엥의 사형으로 즉 비극적으로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두 거장 작가들이 관습을 거스르는 연인들을 다루면서 공고한 사회적 현실을 소설 속에서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안나와 관련해 든 또 하나의 생각은 안나는 개혁이 서서히 진행되어 가지만 여전히 봉건적이고 폐쇄적이며 차별적 성격이 강하게 존재하는 러시아에서 갈 곳 없는 하나의 시대정신의 표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안나의 첫 번째 남편은 관료적, 형식적 성향이 강한 남성의 전형이다. 그는 언제나 사무에 몰두하며 자신 개인의 감정보다도 사회적 평판을 중시한다. 중반에는 그 성격이 바뀌어 기독교적 관용의 태도를 보여주다가 후반으로 가서는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유행하던 신비주의적 미신을 믿는 태도를 보인다. 안나의 애인인 브론스키는 당시 젊은 귀족 남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하는데, 그는 여유 있는 경제적 상황 속에서 멋과 여유, 유흥과 사교를 즐기며 신앙적인 측면은 떨어지고 자유주의적인 인물과 어울린다. 처음에는 군인이었지만 안나와의 결합 이후 병원을 설립하며 새 시대를 준비하는 개혁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안나가 소설 후반에 신분이 천한 영국 여자애에게 자신의 딸보다 더한 애정을 느끼며 교육을 시키자 여성을 교육시키는 것은 쓸 데 없는 것이며 핏줄도 아닌 영국 여자아이에게 애정을 쏟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영국 여자아이에 대한 안나의 애정을 성해방적, 계급 해방적, 탈민족주의적 정신의 태도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까. 작가의 분신인 레닌은 죽음, 삶, 농부, 계급, 종교, 러시아 등 다양한 주제들 사이에서 고뇌하고 주저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안나는 이와 대비되게 최후에 가서는 오로지 브론스키에게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나마 관심을 쏟던 아동교육책은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고 출판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영국 여자아이 한나에 대한 애정은 브론스키에게 비난받는다. 이는 관습타파적이고 개혁적인 러시아의 새로운 정신이 여성이라는 외피를 입고 사상 실현의 길이 막힌 채 의지할 남성(현실에서는 여론 또는 권력, 시대상황 등이 될 수 있겠다.)을 찾다가 결국 오갈데 없이 파탄에 이르게 되는 과정으로 보는 것도 재미있는 해석이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