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1970년대에 초판이 나온 책이다. 내가 읽은 것은 개정판으로 초판의 10장에 11장과 12장을 새로 추가한 버전이다.
책에서는 이기적 유전자가 어떻게 생물의 몸 속에서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로 전해지며 불멸을 꿈꾸는 지에 대해 나와 있다. 유전자 단위에서 진화를 설명한 것이지만 전반적인 책 내용은 이전에 읽었던 진화심리학 관련 책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전에 읽은 책들과 겹치고 있어서 재미가 떨어지는 이유가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프레임을 접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궁금증은 크게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인가?' '인간은 유전자의 숙주인가?'
이 물음들에 대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답해보자면 이렇다. 우선 책에서는 유전자의 이기성에 대해 논한다. 하지만 이기적인 목적, 즉 다른 경쟁 유전자들을 물리치고 생명체 내에 퍼져 나가 대를 이어 존재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기적인 방식, 즉 사기나 기만, 배신 등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그리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유명한 게임인 '죄수의 딜레마' 를 소개하는데, 한 연구자가 이 게임의 다양한 전략을 공모한 뒤, 이 전략을 가지고 게임을 진행시켜보자 가장 이득을 보는 전략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Tit for tat)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이 먼저 자신을 배신하기 이전에는 상대방과 협력하여 이득을 얻다가 배신을 당했을 경우에만 자신도 배신을 하고, 상대방이 다시 협력하기 시작하면 자신도 다시 협력을 하는 전략이다.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타적인, 협력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더 이득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전자가 이기적이라고 해서 유전자가, 또는 인간이 이기적인 행동만을 할 것이라는 결과가 바로 도출되지는 않는 것이다. 자연계에서도 수많은 동물들 사이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관찰할 수 있으며, 이는 유전자의 번식에 이득을 준다. 인간도 대부분의 경우 안하무인 격으로 일상을 살 수는 없다. 그것이 가식이든 진심이든 대체로 이웃이나 친구, 혈연 관계의 사람들과 협력하는 모양새를 띄며 살고 있으며, 누군가 완전히 제멋대로 굴고 온갖 배신과 사기를 일삼는다면 무리에서 도태, 추방당할 것이다. 이는 인간 개체에게도, 유전자에게도 불이익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유전자의 명령을 받는 숙주일까? 책에서는 이 물음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인간의 기본 바탕은 유전자에 의해 형성이 되어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인간에게 뇌가 생기고 의식이 생긴 이상 유전자의 지시에 완전히 복종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생명 단위가 유전자인지 개체인지에 대해 다양한 주장들을 책에서 다루며, 결론적으로 유전자와 개체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협력 관계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내 생각을 적어보자면, 유전자와 개체는 서로의 번영을 꿈꾸며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해 나가는 사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선진국일수록 아이를 덜 낳으려는 경향은 심화되고 있으며 아예 낳지 않기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유전자의 입장에선 악몽일 것이다. 유전자는 어떻게 해서든 개체가 번식을 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자녀계획이 어떻든 간에 계속해서 인간이 성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이유인 듯 하다. 이 본능이 유전자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인간은 이에 대응해 피임, 자위 등의 방식으로 번식하지 않으면서 성욕만을 해결하는 방식을 택한다. 성욕을 일으켜 성관계와 임신,출산으로 이어지게 하려는 유전자의 시도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번식을 제한함으로써 인간은 개체로서의 자신의 삶을 더 즐기고, 자아실현하는 데에 힘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인간은 유전자의 영향이 아니라면 자손을 원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이 든다. 책에서도 개체로서는 한정된 자원을 자식에게 투자하기 보다는 개체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은 몰라도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간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죽음에 대한 불안감과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자신과 닮은 자식에 대한 욕구를 불러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이상 자식을 원하는 마음도 계속될 것이다.
'독서&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짜와 가짜 (0) | 2018.07.16 |
---|---|
서해순이 건드린 것 (0) | 2018.07.16 |
<영화 감상> 러빙 빈센트 (0) | 2018.07.16 |
<독서 후기> 스탕달, 적과 흑 (0) | 2018.07.16 |
단상(1) (0) | 2018.07.16 |
천규석, 윤리적 소비 <책 추천> (0) | 2018.07.15 |
<책 추천> 에티카, 스피노자 (0) | 2018.07.15 |
미세먼지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생각 (0) | 2018.07.15 |